안하느니만 못한 복원 Worst 5 | ||
복원의 기본은 원형 유지 |
1.통째로 태워없앤 주사위
보존 처리 과정에서 문화재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경우가 있다. 바로 경북 경주 안압지 출토 통일신라 주사위다. 현재 경주박물관에 안압지 주사위가 전시중이지만 그것은 복제품이다. 1975년 발굴 직후 보존처리 과정에서 전열기 과열로 불에 타 없어진 것이다.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특수 제작한 오븐에 주사위를 넣고 수분을 제거하려 했다. 자동으로 온도가 조절되는 오븐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였다. 그러나 자동조절장치가 고장나는 바람에 그만 오븐이 과열됐고, 소중한 문화재가 불에 타버린 것이다. 어이없는 사고였다.
2. 천장 외부를 콘크리트로 덮은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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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24호인경주 석굴암은 1995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석굴암의 보존 작업은 1912년 이후로 세차례에 겨쳐 일본학자들에 의해 진행됐는데, 거의 완전한 해체와 복원 공사였다. 그 결과 외부경관이 손상되고 침수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남겼으며, 오늘날까지 석굴암의 보존에 큰 어려움을 안겨줬다. |
해방 이후 1961년 우리 학자들에 의한 조사가 이뤄져 1962~1964년 전면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됐다. 이 때 일본학자들이 잘못 배치한 불상의 위치를 바로잡고 석굴에 영향을 주는 습기 제거를 위해 기계장치를 설치하고, 조선시대 화가 정선이 그린 ‘교남명승첩’에 의거해 석실입구의 목조전실을 세웠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에 목조전실의 존재유무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일고 있다.
3. 상상복원한 경주 동궁과 안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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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는 발굴된 건축부재를 활용해 부분적으로 원형을 복원하고, 나머지 부분은 상상을 통해 복원한 건축물이다. |
이 때의 건물 복원 작업은 다른 지역과 달리 지상의 건축물이 완전히 사라져 원형을 알 수 없는 경우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발굴된 건축부재를 적극 활용해 부분적인 원형복원과 상상복원을 결합시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복원 건축물의 전체적인 풍으로 볼 때 당시의 원형이라고는 확신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좀더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당시 주변 국가의 유사한 건축물을 비교해 작업이 이뤄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4. 곡선미 재현에 실패한 경복궁 흥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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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침전부분을 비롯한 동궁이 복원됐고, 흥례문 주변의 복원이 끝남으로서 기본적인 궁궐의 골격이 갖춰졌다. 이 과정에서 흥례문의 사례는 건축문화유적의 복원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를 깨닫게 해줬다. 국내 최고의 장인이 동원됐고 관련자료가 비교적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복원 결과는 원형과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목조건축이 갖고 있는 처마의 아름다운 곡선의 미는 약간의 차이만 있어도 시각적으로 불편한 느낌을 주기 마련인데, 흥례문은 그 선의 미를 재현해 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5. 유리막 씌운 원각사터 탑
서울 탑골공원의 국보 2호 원각사터 탑 역시 잘못된 보존 처리 사례다. 이 경우는 좀 특이하다. 이 원각사터 탑은 약한 재질인 대리석 탑인데다 비바람과 비둘기 배설물 등으로 훼손이 가속화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래서 서울시는 2000년 유리 보호각을 세워 탑을 통째로 덮어 씌웠다. 탑을 야외에 노출시키지 않고 유리막으로 모두 감싸버렸으니 어찌 보면 완벽한 보존처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문화재 훼손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유리막으로 씌운 탑에서 어느 누가 문화재의 참 맛을 느낄 수 있겠는가.
원형 유지는 문화재 보존의 대원칙이다. 원각사터 탑의 경우는 훼손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교묘하게 탑의 원형을 훼손한 것이나 다름없다. 넌센스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탑의 숨통을 막고 있는 유리보호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보호각을 철거하면 훼손이 더욱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야외에 노출된 상태에서 과학적 보존처리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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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에 손을 대는 보수 및 수리에는 지켜야 할 엄격한 원칙이 있다. 그 대표적인 원칙은 원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 아무리 문화재를 위한다고 해도 보존 처리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완벽한 보존처리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더 완벽한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미뤄야 한다. 자칫 서툰 보존 보수는 오히려 문화재를 더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후손에게 그 몫을 넘겨야 한다.
뿐만 아니라 원래의 사용 재료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문화재를 보수할 때, 새로운 재료를 과다하게 사용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과도하게 새로운 재질이 들어가면 그건 새 물건이지 오랜 세월의 흔적이 담긴 문화재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보수 후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다시 수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한다. 보수 직전의 훼손된 상태로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석탑 균열을 막기 위해 균열 부위를 합성수지 강화제로 처리했어도 그것을 다시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재에 보수했다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 1999년 보수한 ‘팔도고지도’의 떨어져나간 부분은 일일이 손으로 짜깁기해 넣었다. 그러나 원래 종이보다 약간 밝은 색의 종이를 사용했다. 보수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보수하는 사람에겐 보수 흔적을 남겨 이 문화재가 훼손됐던 것임을 후대에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이광표의 '문화재 아름답게 노화시키는 보존법'기사, 한동수의 '건축문화유산의 보존과 복원'기사 발췌 및 편집>
<출처 : 동아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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